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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짧은 역사

도시의 짧은 역사

19세기 중엽까지 현 하바롭스크는 네르첸스크 조약에 따라 청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 국경 사이의 중립 지역에 위치했다. 1858년 3월 28일(율리우스력으로 3월 16일)에 아이훈 조약(동부 시베리의 총독인 백작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가 진행한 러시아 측의 회담)에 따라 아무르의 왼편 기슭 전체는 러시아 측에, 우수리 강의 오른쪽 기슭은 중국에 넘기되, 아무르 우수리 어귀에서 바다까지의 우스리스크 지역은 공유지로 정할 것이 결정되었다. 조약의 체결 이후, 이주의 근간을 위해 제 13 동부 시베리 정규대대가 야코바 디야첸코의 지휘하에 파견되었다. 1858년 5월 31일, 하바롭스크의 군 감시초소가 창설되었다. 1865년 무렵 하바롭스크에는 거주민이 1294명 정도였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제 13 동부 시베리 정규대대의 군인들과 장교들이었다.
시호테알린 산맥의 세 산 중 작은 산맥의 첫 길과 첫 도시 구획들이 하바롭스크 시 건설 착수에 있어 역사적인 시작이었다. 1880년경 하바롭스크는 이미 연해주 지역의 충분히 큰 규모의 도시여서 약 2036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93년 11월 2일(율리우스력에 따라 10월 21일) 도시가 하바롭스크로 이름이 바뀌었다.
10월 혁명과 적백내전 시기에 도시의 위신은 여러 번 바뀌었다. 1917년 12월 19일 하바롭스크는 달소브나르콤의 적군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후 12월 12일에서 20일까지 극동 전체에 대한 소비에트의 힘을 인정한 후, 극동 소비에트 제 3회합이 개최되었다. 1918년 9월 5일 도시는 일본 제 12사단의 지원 아래 체코계인 미하일 디테리흐스와 연합한 백군 대장 이반 칼므코프의 손에 넘어갔다. 1920년 2월 13일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패배 이후, 간섭자들이 시에서 철수하고 대장 칼므코프가 만주로 떠났다. 1920년 2월 17일에는 적군 유격대원의 군대가 도시로 들어왔다. 1921년 12월 21일 하바롭스크를 백군 봉기로 이름높은 빅토리 믈차노프 장군의 지휘하에 프리아무르스키 임시정부의 군대가 시를 장악했다. 1922년 2월 5일에서 14일 하바롭스크는 바실리 블류헤르의 지휘하에 극동 공화국의 민족혁명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1922년 11월 14일 극동 공화국의 해체 이후,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었다.
소비에트 정부 형성 이후, 하바롭스크는 경제, 사회 및 문화 분야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했다. 1923년 처음으로 버스가 생겼으며, 1925년 아무르 강을 지나는 철도 다리가 재건되었다. 1936년 하바롭스크, 콤소몰스크, 아무르 간 철도 간선이 건설되었다. 또한 문맹퇴치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새로운 학교와 기술학교, 고등 전문교육기관들이 개관되었다.
1934년에서 1939년 사이에 하바롭스크 시는 극동 하바롭스크 지역의 행정 중심이 되었다. 20세기 후반 도시의 삶에 의미있는 발전들이 늘어났다.



-    1954년 하바롭스크 제 1 화력발전소가 가동되었다
-    1956년 2월 14일 ≪아무르카벨≫공장의 건설이 착수되었다.
-    1960년 하바롭스크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되었다.
-    1971년 1월 14일 하바롭스크 시는 10월 혁명 훈장을 받았다.
-    1975년 도시의 전기버스 1호선이 가설되었다.
-    1976년 도시에서 ≪소비에트 러시아≫ 신문 배 국제 하키대회가 개최되었다.
-    1979년 하바롭스크에서 제 14회 태평양 학회가 열렸다.
-    1981년 도시에서 하키 분야 세계 챔피언십이 진행되었다.


오늘날의 하바롭스크는 극동의 대규모 산업과 교통, 문화, 교육 및 학술연구의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다.

- 1996년 하바롭스크 역사상 최초의 시장 선출이 있었다. 여기서 파벨 드미트리비치 필리포브가 선출되었다.
- 1998년 하바롭스크의 중앙 광장의 재건이 완료되었다,
- 2000년 5월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지시로 러시아 연방에서 연방지대가 수립되었다. 하바롭스크가 극동연방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 2006년에 민족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보건 분야의 하바롭스크 시 심혈관 외과 센터인 고등의학 기술센터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 2008년에 철도역이 전반적으로 수리되었다. 또한 가로등과 지하도가 건설되어 있는 프리바그잘나야 광장이 보수되었다.
- 2009년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하바롭스크에서 러시아 최고위 회담인 EC가 개최되었다.
- 2010년 볼쇼이 카자치 지역에서 하바롭스크가 우스리스크 카자크 군대의 소재지로 확정되었다.
- 2012년 11월 3일 하바롭스크가 ≪명예군사의 도시≫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 2013년 여름 끝 무렵 초가을에 하바롭스크는 1897년 이래로 역사상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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